오늘의 말씀-
성령이 깨닫게 하는 은혜
10/09목(木) 고전2:6-12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연인이 예수를 믿는 것은 기적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진리나 예수님의 말씀은 자연인의 합리적인 사고나 논리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은 세상 논리와 맞지 않습니다.
천국이 저의 것이요.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이러한 말들은 세상 논리와 맞지 않습니다. 세상 의 논리는 악착같이 일을 해야 복으로 옵니다. 성경의 말들은 전혀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을 받고 은혜의 생활을 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이고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전적인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깨닫게 해 주셔야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승리하려면 성령 체험을 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기 전에는 이스라엘을 떠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성령이 깨닫게 하는 은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령의 은혜로 십자가의 지혜를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지혜는 세상 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십자가는 내가 죽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자기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성경에서는 내가 십자가에서 죽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때 승리한다고 합니다. 내가 죽고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는 삶이 구원 받은 자의 삶입니다.
사단은 지금도 “너는 스스로 살 수 있는 존재야” 라고 속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가 죽을 때 하나님을 의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우리는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십자가의 지혜에 눈을 뜰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구원과 승리가 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구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예비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귀로도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하지 못하는데 성령은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미래의 일을 걱정하지 않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옥에 갇혀 고문을 당해 죽음이 문 앞에 있지만 자기 앞에 준비된 일을 알고 있기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한 밤중에 일어나 기도와 찬미를 합니다. 옥문이 열렸으나 도망하지 않고 오히려 간수를 구원하여 빌립보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한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기도처가 없을 때도 걱정하지 않고 강가로 가서 말씀을 전하니 하나님이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기도처를 준비하십니다.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행 16:14). 스데반은 죽음 앞에서 천국을 보았기에 돌로 맞아 죽으면서도 천사의 얼굴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은혜로 주신 것을 알게 하십니다.
성령 받으면 우리의 삶이 우리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사람은 겸손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직장, 자식, 가족, 국가, 교회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지키고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의 은혜 위에 은혜를 누리고 사는 자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6). 우리가 구원 받은 것도 전적인 은혜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다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는 성령이 깨닫게 해 주셔야 알 수 있습니다. 은혜 가운데 살면서 그것이 은혜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비극이고, 준비된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 실패의 원인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고 늘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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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연합하면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삶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신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모든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지시므로 우리는 삶의 결과에서 자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을 하는데 필요한 모든 자원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 세상에 준비하였으므로 기도로 찾아서 쓰면 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공부하는데 필요한 학비 또한 준비되어 있으므로 기도하면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이미 우리의 필요를 다 이루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기도할 때 성령이 깨닫게 하시고, 기도할 때 준비된 것을 찾게 하십니다.
이런 은혜를 얻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자아가 처리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자신이 죽을 때만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죽고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가 되면 내가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이 됩니다. 그 일은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시고, 나는 그 분을 나타내는 도구일 뿐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에서 죽기만 하면 내 모든 삶은 하나님이 완벽하게 이루어가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 인본주의가 되고,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시면 신본주의가 됩니다. 신본주의가 되어 나를 통해 하나님이 나타나는 것이 영광의 삶이요, 은혜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사도바울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 보다 더 많이 수고 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성령이 깨닫게 하여 은혜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