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L 2014 기독교 박해지수와 박해국가 50개국 순위와 정보
2. 소말리아
3. 시리아
4. 이라크
5. 아프가니스탄
6. 사우디 아라비아
7. 몰디브
8. 파키스탄
9. 이란
10. 예멘
11. 수단
12. 에리트레아
13. 리비아
14. 나이지리아
15. 우즈베키스탄
16. 중앙아프리카공화국
17. 에티오피아
18. 베트남
19. 카타르
20. 투르크메니스탄
21. 라오스
22. 이집트
23. 미얀마
24. 브루나이
25. 콜롬비아
26. 요르단
27. 오만
28. 인도
29. 스리랑카
30. 튀니지
31. 부탄
32. 알제리
33. 말리
34. 팔레스타인
35. 아랍에미리트
36. 모리타니아
37. 중국
38. 쿠웨이트
39. 카자흐스탄
40. 말레이시아
41. 바레인
42. 코모로
43. 케냐
44. 모로코
45. 타지키스탄
46. 지부티
47. 인도네시아
48. 방글라데시
49. 탄자니아
50. 니제르
WWL 2014 요약
북한은 12년 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약 5만-7만의 크리스챤들이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다. 성경을 소지하다 발각된 이들은 오랜 기간의 징역 생활 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최상위 10개국에는 북한, 소말리아,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사우디아라비아, 몰디브, 파키스탄, 이란과 예멘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10개국 중 9개 나라가 이슬람 국가이다. 또한 이슬람 극단주의가 WWL의 50개국 중 36개국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지난 15년 동안 가장 큰 박해의 요인이 되고 있다.
처음으로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인 소말리아가 2위에 올랐다. 수단 또한 11위에 올랐으며 아프리카의 나라들이 WWL의 상당 수를 차지해가고 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은 새롭게 순위에 들어왔으며 16위에 올라와 있다. 셀레카 반군 세력에 의해 크리스챤들이 끔찍한 폭력을 당하고 있다.
시리아(3위, 작년 11위)와 파키스탄(8위, 작년 14위)이 처음으로 10위 안에 들어왔다. 3년이 다 되어가는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악화된 상황과 파키스탄의 여전히 살기 어려운 상황이 주요 원인이 되었다. 급진적 무슬림들은 크리스챤에게 난폭한 행동을 할 여지가 있으며 정부는 그들을 제어할 능력이 없다.
WWL의 50위 밖으로 나간 나라들은 아제르바이잔(작년 38위), 키르키즈스탄(작년 49위), 우간다(작년 47위)이다. 반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이 16위에, 스리랑카가 29위에, 방글라데시가 48위에 오르며 새롭게 50위 안으로 들어왔다. 콜롬비아는 작년 46위에서 25위로 비약적인 상승을 보였다.
살인, 강간, 납치, 교회 방화와 같은 내용이 포함된 폭력 분야에서 높은 순위에 오른 나라들은 순차적으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시리아, 파키스탄과 이집트(동점), 이라크와 미얀마(동점), 나이지리아, 콜롬비아, 에리트레아, 수단 등이다.
긍정적인 소식으로는 말리가 작년 7위에서 33위로 내려간 것과 탄자니아가 작년 24위에서 49위로 내려간 것이다.
과거 20~30년간 박해받는 교회에 일어났던 큰 추세와 변화
1. 공산 치하에서 일어난 중국 교회의 폭발적인 성장은 세계 최대의 (잠재적으로 가장 중요한) 박해받는 교회를 낳았다.
19세기에 중국만큼 개신교 선교사들이 많이 찾은 나라는 없었다. 따라서 마오쩌뚱이 정권을 잡고 선교사들을 추방한 1949년 전에 이미 교회의 토대가 잘 놓여졌다. 그러나 박해는 극도로 심했고, 특히 문화혁명(1966-1976) 기간에는 극단적이었다. 1970년대 초에 크리스챤들의 수는 50만명 아래로까지 줄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세계 최대의 부흥이 중국의 시골 내륙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때 아마 5,000만 명 이상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왔다. 중국교회의 성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오늘날 중국교회는 8,000만 명 이상인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 교회의 전략적 중요성은 여러 면에서 막대하다. 수적으로, 세계 최대의 박해받는 교회를 이루며, 미국과 브라질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교회이다. 정치적으로 세계 2위의 강대국으로서 정치 지도자들은 새로운 사회 철학을 찾고 있다. 문화적으로, 많은 중국 지식인들이 문명화에 월등한 하나의 윤리로서 기독교를 추천하고 있는 현상은 의미심장하다. 교회 용어로, 가정 교회 모델이 탄력적이고 성공적임이 증명된 것은 주목할만하다. 가정 교회 모델은, 덜 교파적이고, 더 유연한 교회 형태를 만들기 원하는 전세계 “신흥 교회(emerging church)” 복음주의자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 선교의 측면에서, 중국 교회 지도자들은 중국의 부흥을 세계의 다른 교회와 “나누는”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 – 이는 매우 최근의 현상이다.
그러나 집권하고 있는 공산당은 권력을 쉽게 나눌 생각이 없다. 공산당이 일부 자본주의를 인정할지는 몰라도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다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략은 간단하다 – 공산당은 물질주의적인 소비자들을 양산하면 자연히 비물질적인 욕구들은 사그라들 것을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중국의 부흥은 번영이 영적인 욕구를 이길 수 없음을 공산당에게 보여주었다. 중국의 부흥이 중국을 변화시킨다면, 세계도 변화시킬 것이다.
2. 이슬람 보수주의의 발흥으로 중동에서 교회가 대거 탈출하고 있다.
중동의 크리스챤들은 (수단과 이란이 포함된다면) 1,700만 명 이상을 헤아린다, 그 중 대다수는 정교회 교인들이다.
최근에 가장 큰 대규모의 크리스챤 엑소더스는 이라크에서 일어났다. 시아파와 수니파 민병대들의 끔찍한 박해로 인해 현재 겨우 30만 명의 크리스챤들이 남아있다. 1991년에는100만 명이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크리스챤들이 급감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베들레헴의 85%는 크리스챤이었으나 이제는 15%도 안된다. 예루살렘은 1922년에 53%가 크리스챤이었으나 이제는 2%이다. 중동 전역에서 크리스챤들이 이민을 가고 있다…박해 때문에.
언론의 헤드라인은 알카에다, 하마스, 헤즈볼라와 같은 극단주의 단체들의 행위가 주를 이룬다. 그들이 크리스챤들의 대규모 탈출에 일정 역할을 담당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이라크에서 그렇다. 그러나 그들의 위협이 사태의 전부는 아니다. 엄격하고 근본주의적인 이슬람파들이 일어나 크리스챤 소수 공동체에 대해 덜 관용적이 되도록 문화를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아랍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이며, 무슬림들과 역사적으로 기독교 소수자들인 콥트 교인들의 관계도 상대적으로 좋았었다. 그러나 1974년과 1985년 사이에 300만 명 이상의 이집트인들이 걸프 지역, 주로 사우디아라비아로 이민을 갔다. 거기서 그들은 이슬람의 매우 강경한 형태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집트로 돌아와서 그 더 엄격하고 불관용적인 “와하비즘”신조들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때가 바로 사다트 대통령이 나세르 시대로부터 잔존하는 사회주의 세력들을 물리치기 위해 이슬람 지도자들에게 구애를 하던 무렵이었다. 결과적으로, 타렉 오스만의 표현에 의하면, “10년도 채 안되어, 이집트의 국가적 정체성이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시민적 성격에서 유사 이슬람 국가로 대체되었다. 자유로운 대중적 분위기와 담론은 종교적이고 보수적으로 바뀌었다.” 2월에 무바라크 대통령을 하야시킨 이집트에서의 아랍의 봄이 비록 자유주의적 요소들에 의해 가열되었을지라도, (최소한 현재까지의)결과는 11월 선거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장악했다.
오늘날 중동에서의 크리스챤 박해는 최소한 7가지 뚜렷한 근원에서 나온다: 국가적 극단주의, 독재자들, 광신적 운동, 문화적 이슬람화, 폭력적 종족주의, 가족의 불관용, 교회의 반대. 이러한 7가지 주된 근원 중에서 문화적 이슬람화가 가장 중요한 박해 형태이다. 이는 크리스챤들을 이등 국민으로 강등시키고 영향력이 없고 무력한 “딤미dhimmi”(이슬람법이 다스리는 국가에서 무슬림이 아닌 국민을 가리키는 말) 계층으로 만든다. 이 과정은 수백년에 걸쳐 일어나고 있었지만, 최근에 급증했다. 뿐만 아니라 너무 만연하여 대항해봐야 소용없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 떠난다. 따라서 기독교는 기독교의 역사적 본거지에서 계속 박해로 인해 고난을 받고 있다.
3. 무슬림 출신 크리스챤들(MBB) 운동이 일어나 하나의 교회 형태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이란에서.
믿을만한 숫자를 얻기는 어렵지만, 지난 20년 간-특히 지난 10년간-무슬림들 가운데에서 엄청나게 많은 수가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 통신혁명이 중요한 촉매제가 되었다. 가장 많은 수가 그리스도께로 나아온 곳은 이란이다. 무슬림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한 이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집에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기독교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위성TV 때문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한번도 교회에 가본적이 없거든요. 너무나 위험한 일이니까요.” 위성TV와 인터넷이 글자 그대로 수백만명의 중동 무슬림들에게 그때까지 접근이 불가능했던 복음의 메시지를 접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무슬림 가운데 가장 많은 수가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곳은 이란이다. 이란의 전체 크리스챤 인구 46만 명 중에서 약 36만 명이 MBB들로 추산된다. 물론 정확한 수를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아직 초기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중동에서 네 번째 계열의 교회가 탄생한 것을 목격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정교회, 카톨릭 교회, 개신교회에 이어 MBB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MBB들은 자기들 고유의 토착적인 기독교 교회를 형성하고 있다.
4. 유럽 공산주의의 붕괴와 동유럽 크리스챤들의 해방
교회 박해의 주요 근원이었던 무신론적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1990년대 초에 무너졌다. 비록 아시아의 공산주의가 지속되고 있을지라도(또 북한과 같은 악랄한 형태로), 이데올로기는 더욱 일상적인 전체주의적 역학에 밀려났다. 동유럽과 러시아가 공산주의 체제를 벗어나던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의 결과로 엄청난 변동이 일어났다. 이는, 단번에, 2억 이상의 최소한 기독교인으로 명명되었던 이들에게 박해가 극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몇몇 동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복음주의적 신앙 생활을 하기에는 위험한 곳이다. 러시아는 다시 발흥하는 정교회로 인해 계속 특별한 우려 지역이다. 특히 정교회의 부와 국수주의적 성향 때문이다. 실질적인 독재자가 남아있어 거의 변화가 없는 벨라루스와 같은 국가도 있다. 자유의 큰 흐름은 유럽연합(EU)에 가입한 특정 동유럽 국가들에 있다.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발틱 국가들이다.
5. 종교적 민족주의 운동들이 아시아 교회를 수세에 몰아넣고 있다
힌두트바는 1990년대 중후반에 세계 최대 교회의 하나인 인도 교회를 압박하면서 엄청난 박해사태를 가져왔다. 힌두트바는 인도가 순수한 힌두 민족의 땅이어야 하면 비힌두인은 인도를 떠나야한다고 주장하는 1920년의 이데올로기였다. 국가가 비힌두인들을 추방할 것을 요구하는 이데올로기였다. 이 “힌두인만을 위한 인도” 주장은 사회주의 무너지고 지배당의 부패로 야기된 권력의 공백 상태에서 번성했다. 1997년 힌두 극단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았을때는 크리스챤 사냥이 허가된 때였다. 1999년 1월23일, 호주 선교사 그래함 스테인즈(Graham Staines)가 인도 오리싸에서 광적인 힌두 폭도들에 의해 자기 차 속에서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산채로 불태워졌을 때, 세계는 비로소 이 현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때 크리스챤들은 매주 공격을 당했고, 2004년 힌두 극단주의자들이 정권을 잃은 후에도 그러한 공격들이 계속되었다. 그와 동시에, 스리랑카에서는, 불교 민족주의가 고개를 들어, 종교적 민족주의가 전세계적인 박해의 동력으로써 등장한 것을 보여주었다. 한 국가 또는 한 국가의 일부 지역을 단 하나의 종교만을 위한 배타적인 곳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력들은 곧 물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세계화가 지역 문화를 위협하면서,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은 고유의 문화를 보호하려는 종족 본능을 재빨리 이용하고 있다.
6. 좌익과 우익 반군들이 범죄집단으로 발전하고 더욱 부패하면서 교회를 향한 적대감이 더 커졌다.
라틴아메리카는 과거에 크리스챤들이 마르크스 혁명주의자들에게 살해당하고, 정부와 게릴라들 간의 전쟁 속에서 십자포화를 당한 곳이다. 이 같은 상황은 아직도 존재한다. 페루의 게릴라 조직(Shining Path)이 패배를 인정하고, 콜롬비아의 무장혁명군(FARC)도 심각한 타격을 입으면서, 정도가 훨씬 덜해졌을 뿐이다. 이 반군들은 마약밀매로 자금을 조달해왔는데, 이제 이데올로기 전쟁이 종말에 다다르자 순전한 범죄집단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좌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과테말라의 우익 반군들도 같은 과정을 겪고 있다. 이들은 마약 범죄 조직과 연계했다. 지난 5년간 라틴아메리카 곳곳이 마약과 관련된 폭력으로 진동했다. 이를 경험하지 않은 시민들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서방 정보국들은 마약밀매업자들이 알카에다와 같은 조직과 연계되어 있으며 성매매와 같은 다른 범죄 요소까지 합하여 세계적인 연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결과적으로 많은 크리스챤들이 이제 이러한 십자포화 가운데 놓이게 되었다. 더 광범위하게 세계는 더 범죄적이 되어가고 더 많은 국가들이 실패하고 있으며, 모든 곳에서 높은 부패지수가 나타나고 있다. 크리스챤 지도자들이 다양한 부패의 흐름에 맞서서 일어나면, 박해의 표적이 된다.
7. 아프리카 기독교와 이슬람 극단주의가 샤헬 벨트에서 충돌하고 있다
(주: 샤헬벨트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남쪽 가장자리의 지역명. 세네갈 북부 •모리타니 남부에서 말리 중부 •니제르 남부 •차드 중남부까지 이르는 지역)
북부나이지리아는 21세기 초의 박해 호러 스토리(공포영화)였다. 글자그대로 수천명의 크리스챤들이 북부나이지리아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손에 죽었다. 그리고 작은 국가 에리트리아는 수많은 크리스챤들을 투옥시키면서 21세기에 박해의 상징적 이미지를 제공했다. – 에리트리아의 크리스챤들은 감옥 콘테이너 속에서 낮에는 뜨거움에 달구어지고 밤에는 추위에 얼었다.
아프리카는 항상 복음을 위한 주요 전쟁터였다. 이슬람은 남쪽으로 확장해오고 기독교는 북쪽으로 확장해 왔으며 그 둘이 샤헬 벨트 국가에서 만난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가 아니다. 최악의 폭력은 수단에서 일어났다. 수단은 북부아랍과 남부 기독교가 만나는 곳으로서 거의 2백만 명의 크리스챤들이, 주로 딩카, 누에르, 실룩, 누바 족 출신으로, 1983년과 2000년 사이에 죽임을 당했다. 소말리아는 오늘날 너무나 무법천지이고 극단주의적이어서 그곳에 크리스챤으로 살아가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근에 유일한 좋은 소식은 크리스챤이 지배적인 남부 수단이 분리독립한 것이다. 물론 북부에 남아있는 크리스챤들에게는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계속 대부분의 폭력을 경험하는 곳은, 아프리카 대륙에 가장 많은 전도자들을 보내는 국가인 나이지리아이다.
8. 9/11 테러가 종교와 교회에 대해 공격적인 세속주의자들의 반격을 일으키다
세속주의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전통적 의미는, 국가가 종교와 분리되고 정치적으로는 국민의 삶 속에서 종교가 번성하도록 허락한다는 견해이다. 더 현대적인 의미는, 국가가 반-종교적이어야 하고 공적으로는 종교를 배제하여야 한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현대적 관점은 9/11 사태 이후로 강력한 추동력을 얻었다. “히스테리컬한 무신론자”가 등장했다. 무신론자 리챠드 도킨스는 역설적이게도 릭 워렌 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삶”과 나란히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을 썼다. 그의 책 “만들어진 하나님”에서 도킨스는 모든 종교가-예외없이- 너무나 비합리적이고 위험하기 때문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종교가 사회에 최소한의 영향만 미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샘 해리스와 같은 다른 무신론자들이 가세한 이 운동은, 종교인들을 위험하고, 오류에 빠지고, 완고한 바보들로 규정하기 좋아하는 언론의 동조로 부상했다.
이 무신론 운동이 박해받는 교회에 미치는 주요 효과는, 박해의 한가지 동력인 세속적인 불관용이 더 거세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서구권 국가에서 크리스챤들은, 사회에서 자유롭게 신앙의 기준대로 살아가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성적인 문제가 그러한 전투장으로 자주 나타나지만, 연설, 크리스챤의 상징 사용, 교육과정 등의 영역에 있어서도, 종교적 색채를 서구권 생활방식에서 제거하려는 세속주의자들의 노력을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많은 경우 일부 서구권 국가들의 크리스챤들 가운데 새로운 방어가 생겨나게 되었다.
9. 서구권에서 박해받는 교회를 돕기 위한 정치적 기구가 만들어지다
1998년 미국의회는 국제종교자유법(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 Act)을 통과시켰다. 그때까지 정치계에서 박해라는 이슈가 얼마나 무관심의 대상이었는지를 생각할때, 이 법안이 통과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입법을 통해, 미국 국무성에 소속된 해외 종교 자유를 위한 대사가 세워졌으며, 전세계 종교 자유 실태에 관한 실질적인 연례보고서가 요구되었다. 이 문제가 국무성의 관료주의 속에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병렬 기구도 만들어졌다. – 종교적 자유를 위해 주저하지 않고 “공개발표”까지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위원회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기구가 하루아침에 정치 문화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중요성은 막대하다. 서구 크리스챤들이 세계 유일의 강대국의 정치계에 압력을 넣어 종교적 박해를 감시하는 것을 하나의 외교적 임무로 만들게 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발전들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영향력있는 “종교와 공공 생활을 위한 퓨 포럼 Pew Forum for Religion and Public Life”이다. 이는 종교적 자유에 대한 연례보고들을 보기 시작했고, 그것을 종교에 대한 규제들을 추적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의 근거로 삼았다. 2009년에 처음 발표되어 2011년에 업데이트된 그들의 “종교에 대한 세계 규제들 Global Restrictions on Religion”보고서는 종교적 자유의 규제들에 대한 실증적인 근거에 가장 가까운 보고서이다. 그 보고서에 언급된 다음 선언은 옹호사역 분야에서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는 문구가 되었다. “전세계 68억 인구 중에서 거의 70%가 종교에 높은 규제가 있는 국가들에 살고 있다. 그러한 규제의 예봉은 종교적 소수자들에게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박해받는 크리스챤들에 대한 우려가 서구권 국가의 외교정책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려면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이제, 비록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과정이지만, 분명한 한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10. 역사적 교회의 개신교 크리스챤 박해는 현저히 줄었다. 특히 로마 카톨릭과 정교회의 개신교 크리스챤 박해가 줄었다.
우리가 2000년 교회 역사를 되돌아볼 때, 많은 크리스챤들이 다른 크리스챤들에 의해, 특히 유럽의 소위 종교전쟁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슬픈 사실이다. 모든 교파의 위대한 성인들의 일부, 캘빈과 루터와 수많은 교황들이 그 시대의 윤리에 따라 다른 신학 이론을 가진 크리스챤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심지어 20세기까지도 이는 큰 문제로 남아있다. 라틴아메리카 로마 카톨릭교도들은 오순절 교인들을 박해한다. 특히 질투심으로 그렇게 한다. 러시아와 루마니아의 정교회들은 복음주의자들을 맹렬히 비판한다. 아르메니아 정교회는 이란인 MBB가 교회에 들어오면 쫓아낸다.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복음주의자들의 생활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전세계적으로 다른 교단, 특히 오순절파 크리스챤들에 대한 카톨릭과 정교회들의 박해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아마, 베네딕트 교황이 종교적 자유에 대해 새롭게 강조하고 카톨릭교인들은 더 높은 기준을 고수할 것을 공개적으로 주장했기 때문인 듯 하다. 정교회에서는 특히 EU에 속한 정교회들이 차별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집트 콥트 정교회는 몇 년 전에 전략을 바꾸었다. 콥트교회의 많은 젊은이들이 단지 성경적 지식을 얻기 위해 복음주의 교회들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계속해서 싸우는 대신, 잘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직접 성경을 나누어주고, 성경말씀을 가르치며, 교회 내에서 성경교사들을 새롭게 양성하며 개신교 크리스챤들과의 마찰을 상당히 줄이고 있다.
위의 추세들은 오늘날 박해받는 교회의 단지 몇가지 큰 흐름이다. 몇몇 추세는 소망을 주고, 다른 추세들은 절망을 가져오는 소식들이다. 박해받는 크리스챤들은, 많은 경우, 역설적이게도, 늘어나는 박해 속에서 더 많은 소망을 찾는다. 한 인도 목사의 말을 빌면, "우리가 박해를 받을때, 우리는 담대해집니다. 우리의 증거가 사단에게 위협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증거가 열매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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